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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는 배달 중! 3

반장
1, 2편이 존재하는 글입니다.
http://posty.pe/5kc00q

3-1.

  이제노가 자퇴한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걔는 꾸준히 나재민 집 현관에서 담배를 피웠고, 꾸준히 처맞았다. 이게 관심을 끌기 위한 행동인지 뭔지 의심스러울 수준이었다. 이동혁은 권태기다 뭐다 하더니 이제노의 사탕발림에 다시 홀랑 넘어갔다. 또 황인준이 귀국하고부터는 넷이서 존나게 붙어먹었다. 거실에 술 깔아놓고 인생 욕하는 게 하루 걸러 하루마다 이루어졌다. 나재민은 가끔 황인준이랑 섹스했고 또 가끔은 이제노랑 섹스했다. 이동혁이랑은 안 했다. 일말의 죄책감 같은 거였다.

 

  나재민은 살갗이 벗겨지고 발갛게 부은 허벅지 안쪽에 후시딘을 짜 바르다 말고 그대로 엎어졌다. 침대 스프링 반동 탓에 자고 있던 황인준이 움찔거렸다. 졸려. 아파. 피곤해. 배고파. 온갖 생각을 하며 나재민은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들었다. 제 옆에 누운 황인준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마른 체형이 오롯이 느껴졌다. 목덜미에 코를 박고 숨을 들이마시면 제 숨에 황인준의 살내음이 들어찼다. 맨 어깨에 고개를 부비적거렸다. 인준아. 인준아아. 라면 끓여줘. 그럼 황인준은 미적거리며 일어나 침대 아래 떨어진 속옷을 주워 입었다. 부엌으로 나가 짜파게티 봉지를 트는 황인준의 등에 대고 나재민이 소리쳤다. 인준 오빠 짱! 황인준은 대답 대신 면에 올리브유를 쳤다.

 

  프라이팬을 들고 거실 테이블에 가 앉았다. 냄비 받침대에 프라이팬을 올려놓고 앞접시 두 개를 깔았다. 나재민은 수저를 테이블에 올려놨다. 나란히 맨바닥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발치에 굴러다니는 블루투스 스피커를 주워 올렸다. 전원을 켜고 블루투스를 연결하자 좆같이 현란한 불빛이 번쩍였다. 무지개로 발광하던 스피커는 황인준이 몇 번 조작하자 이내 잠잠해지고 단조롭게 노래만 내뱉었다.

 

  인준아 그거 진짜 불 어떻게 끄는 거야.

 

  비밀.

 

  으응.

 

 

  면이 불었는데도 먹을 만했다. 황인준이 냉장고에서 사이다 한 병을 꺼냈다. 치킨 시킬 때 딸려왔던 거다. 자리에 앉지도 않고 급하게 서서 병째로 마시다가 좀 흘렸다. 나재민이 휴지를 집어 들어 건넸다.

 

  인준아 너 너네 집 언제 가니 부잣집 아들내미가 여기서 이래도 돼?

  아 몰라아

 

  황인준이 찐덕해진 허벅지를 휴지로 문질렀다. 헐렁한 속옷 틈으로 맨살이 엿보였다. 나재민은 그 꼴을 쳐보다 눈을 깔았다. 우리 인준이가 한 짜파게티가 짜장면보다 맛있는 것 같애. 배달 나갈 때까진 시간이 한참 남았다. 황인준이 쓰레기통에 휴지를 처박고 다시 자리에 와 앉았다. 나재민은 황인준이 먹다 만 사이다를 벌컥 들이켰다. 괜히 발을 꼼지락댔더니 복사뼈끼리 맞닿았다. 누구 하나 피하지 않았다.

 

 

 

3-2.

 

  나재민은 사람을 좋아했다. 무작정 사람을 따랐다는 건 아니고, 제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애정을 퍼줬다. 거기에 해당하는 게 몇 명 안 됐을 뿐이지. 나재민은 방바닥에 드러누워 사념에 잠긴다. 발치엔 술에 뻗은 이제노의 손이 걸린다. 소파엔 멍한 눈으로 앉아 망고 주스를 빠는 이동혁이 있다. 황인준이 화장실에 처박혀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렸다. 나재민은 힘겹게 몸을 뒤집었다. 엎어진 물 잔 탓에 티셔츠가 젖었다. 산다는 게 뭘까 친구들아. 온몸에 힘이 빠져 입 밖으로 내뱉진 못한 말이다. 화장실에서 나온 황인준이 비척거리며 나재민을 일으켜 앉혔다. 나재민은 무슨 말이라도 내뱉어야만 할 것 같단 의무감에 사로잡혔으나 입만 몇 번 벙긋거리다 말았다.

 

  "재민아."

  "어."

 

  이어지는 말이 없다. 나재민은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한다. 가뜩이나 텐션 낮은 애가 술만 먹으면 더 그랬다. 황인준은 그 옆에 앉아 엎어진 물컵을 바로 세웠다. 나재민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자 어깻죽지가 축축했다. 이동혁은 다 먹은 망고주스 팩에 대고 빨대를 계속 빨아댔다. 듣기 싫은 바람 빠지는 소리가 적막 속에 깔렸다.

 

  나재민은 종종 외모를 열심히 가꾸어 잘생겨진 다음 황인준을 꼬셔서 그의 재산을 야금야금 털어먹으며 유복하게 사는 꿈을 꾸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이제노의 데뷔 날짜가 잡히면서 나재민의 꿈은 더 구체적이고 비현실적으로 변태했다. 황인준의 의사는 별로 상관없었으나 왠지 걔도 싫어하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상관있었다. 나재민의 현재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으나 그는 이게 유지되길 바랐다. 이제노와 섹스할 때마다 이동혁이 떠오르고, 황인준과 키스할 땐 울컥 차오르는 감정에 죽고 싶었다. 그 감정이 커서도 쭉 유지되길 바랐다. 제 곁에 있는 사람들이 단 하나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떠나는 감각엔 평생 익숙해질 수 없을 것이다. 잃을 게 너무 많았다. 그것은 아주 무서운 구속이었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머릿속으로 되뇌고는 당장 제 곁의 친구들을 응시했다. 망해도 같이 망하자 얘들아. 그럴 리 없단 건 지가 제일 잘 알았다.

 

  이동혁은 팩 주스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그냥 졸린 건지 비척대며 안방에 걸어 들어갔다. 아침까지 황인준이 맨몸으로 누워 잠들었던 그 침대에 풀썩 엎어졌다. 이동혁이 발을 뻗어 문을 걷어찼다. 쾅 소리와 함께 문고리 안쪽에서부터 철커덕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황인준이 나재민의 어깨에 기대고 있던 머리를 들어 걔의 볼을 깨물었다. 그다음엔 입술 언저리. 핥고 깨물고 입을 맞췄다. 거실에서 황인준과 나재민이 서로 입술을 감쳐물고 비빌 때 이동혁은 안방 침대에 엎어져 기절했고 이제노는 거실 바닥에 엎어져 꿈을 꾸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이제노네 그룹의 데뷔 티저, 그리고 그걸 본 리더 형이 티저 존나 구리다고 한탄하는 장면이 EDM처럼 툭툭 끊겨 반복 재생됐다.

 

 

 

3-3.

 

  이동혁의 허벅지엔 마잭이 살았다. 어정쩡한 필기체로 적힌 마이클 잭슨. 중학교 때 친구가 타투 기계를 샀다고 연습 삼아 했던 거라는데, 포스트잇 사이즈로 적힌 마이클 잭슨은 색소가 빠지고 번져 썩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었다. 하복 체육복 반바지를 입으면 어정쩡하게 드러나는 위치였는데, 그래서인지 이동혁은 애들이 타투 얘길 할 때마다 꼭 커버업 할 거라고 하곤 했다. 돈 모아서 하겠다더니 벌써 이년 반이 지났다. 타투한 걸 후회한댔다. 그 개새끼 믿는 게 아니었어. 아니 씨발 이 놈 새끼가 해주다 말고 담배를 피우는 거야. 이동혁은 했던 얘길 또 하고 또 했다. 우둘투둘한 이동혁의 레터링 문지르는 건 이제노의 취미였다. 촉감이 묘해서 좋아, 여기가. 중독성 있어. 조금씩 번진 잉크를 손으로 덧 그리기도 했다. 이제노가 자퇴한 지금, 시도 때도 없이 이동혁의 바지를 들추고 허벅지를 만지작거릴 놈은 더 이상 없다. 이동혁의 옆자리에 이젠 예고에서 전학 왔다는 이름 모를 전학생뿐이었다.

 

  학교만큼 자주 오는데도 어색한 곳이 없다. 나재민은 꼭 그렇게 생각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황인준 자리를 제가 차지하고 앉았고, 햇볕을 받아 뒤통수가 동그랗게 갈색 빛을 뗬다. 엎드려 자느라 아침 조회를 스킵했더니 일어나자마자 2교시다. 시간표에 크게 적힌 국어(정)을 보고 나재민은 교과서는 집어넣고 부교재만 꺼냈다. 정재현 수업은 문학 모음집을 가지고 작품 해설을 하는 게 주였고, 가끔 모의고사나 지필평가 문제 해설 정도만 추가적으로 보조했다. 정재현은 종종 반 애들이 수업에 집중을 못 할 때 '주님 애들이 수업을 안 들어요...'라고 기도하거나 마이크 테스트를 한답시고 '아 아 아베 마리아' 거릴 때를 제외하면 대체로 괜찮은 편이었다. 게다가 나재민은 정재현이 단조로운 톤으로 읽는 시들을 꽤 좋아했다.

 

  정재현은 흰 분필을 들어 정갈한 글씨체로 판서를 정리했다. 재민은 시력도 나빴고 자리도 뒤쪽이었으므로 글씨가 전혀 안 보였기에 대충 인상을 찌푸리고 초점을 맞추려 노력하다 포기했다. 재현이 불러주는 대로 페이지를 펼쳐놓고 창밖이나 쳐다봤다. 황인준은 등교할 기미가 안 보였다. 카톡 답장도 안 해요, 우리 인준이는. 책상 서랍에서 폰을 슬쩍 꺼내 여전히 1 표시가 떠있는 톡방을 확인하고 홈 버튼을 눌렀다. 배경화면은 언젠가 바닷가에 놀러 갔을 때 찍었던 황인준의 뒷모습이었다. 어두운 밤바다를 배경으로 선 작은 뒷모습이 예뻐서. 제가 찍은 사진들 중 제일 그럴듯해서. 고작 그런 이유였고 그래야만 했다.

 

 

  "내 이번에 가리봉동에 가면 그 녀석 멱살을 휘어잡아야지."

 

  가리봉동에 가면 곰국이 나와요? 정재현이 단정한 목소리로 지문을 읽었다.

 

  곰국만 나오나. 큰 놈 자전거도 나오고 우리 농구 선수 운동화도 나오지요 마누라 빠마 값도 쑥 빠집니다요. 자그마치 팔십만 원이오, 팔십만 원. 제기랄 쉐타 공장 하던 놈한테 일 년 내 연탄을 대줬더니, 이 놈이 연탄값 떼어먹고 야반도주했어요. 공장이 망했다고 엄살을 까길래 내 마음인들 좋았겠소?

 

  정재현의 단정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토속적인 비속어가 섞인 대사는 미묘한 부조화를 일으켰다. 재현의 걸음에 따라 터벅거리는 두터운 슬리퍼 굽 소리. 사락거리며 페이지가 넘어갔다. 걷어올린 셔츠 밑의 흰 피부가.

재민은 재현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고개를 돌렸다. 재현은 재민 옆의 빈 책상에 걸터앉아 다음 문단을 읽었다.

 

  어떤 놈은 몇 억씩 챙겨 먹고 어떤 놈은 한 달 내내 뼈 품을 팔아도 이십만 원 벌이가 달랑달랑한데, 외제 자가용 타고 다니며 꺼덕거리는 놈 룸싸롱에서 몇 십만 원씩 팁 뿌리는 놈은 무슨 재주로 그리 사는 거야?

 

  "죽일 놈들, 죽여, 죽여."

 

  재현은 엎드려 조는 이동혁의 어깨를 가볍게 주무르고는 다시 교탁 쪽으로 돌아갔다. 나재민은 이동혁과 황인준을 차례로 떠올린다. 존나 열심히 살아야 하는 동혁이와 존나 부자인 황인준. 지도 존나 열심히 살아야 하면서 양심도 없이 이동혁을 걱정했다. 필기 하나 없이 깨끗한 교과서가 자꾸만 죄의식을 불러일으켜 나재민은 페이지 수가 적힌 모퉁이에 작게 낙서했다. 점 두 개에 웃는 입 하나. 묘하게 만족스러웠다.

 

 

 

 

3-4.

 

  그 날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침대 옆자린 비었고 알바까지는 시간이 한참 남았다. 여전히 조금은 후텁지근한 날씨에 나재민은 땀에 절은 티셔츠를 펄럭였다. 씻고 나왔을 땐 이제노가 현관문을 막 열고 있었다.

 

  "니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지?"

 

  "..."

 

 

  <이제노는 알고 나재민은 모르는 것들>엔 다양한 것들이 있었다. 이제노와 나재민이 사실 중학교 동창이었다던가. 황인준의 첫사랑이 이동혁의 큰누나라던가 하는 것들. 현관 비밀번호는 지가 술 먹고 불었던 거다. 너 그 날 나한테 황인준이랑 섹스하고 싶다고도 했는데. 딱히 그 사실을 상기시켜주고 싶진 않아서 아무 말도 안 했다. 나재민은 금세 잊었는지 머리를 말리고 옷을 갈아입었다. 대충 거기서 거기로 보이는 셔츠도 신중하게 골랐다. 제노야 이게 더 이쁘지. 으응. 무성의하게 대답했다.

 

  나재민이 채비를 마칠 때까지 이제노는 담배를 피웠다. 넷 중에 담배를 입에 달고 사는 건 걔와 이동혁뿐이었다. 이제노가 말도 없이 자퇴했던 날, 이동혁은 이제노가 선 곳과 똑같은 자리에 서 울면서 담배를 피웠다. 나재민이 아끼던 자전거엔 이제 바깥 냄새보다 담배 쩐내가 더 심했다.

 

  재민은 반팔보다 긴팔 셔츠를 더 좋아했다. 팔꿈치를 덮는 7부 소매 셔츠에 통 넓은 검은 슬랙스.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어슬렁 어슬렁 길을 따라 걸었다. 옆에 선 이제노와 어깨가 툭툭 부딪혔다. 이제노는 답답해보일 정도로 큰 마스크를 쓴 탓에 눈만 겨우 보였다. 밝은 색으로 염색한 머리는 모자로 꾹 눌러쓴 탓에 구레나룻만 겨우 보인다. 재민은 제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우리 제노 진짜 데뷔하면 얼굴도 자주 못 보구 그러겠네.

실없이 마냥 웃었다.

 

 

3-5.

 

  정재현 때문에 짜장 배달을 간 뒤로 나재민은 토요일마다 교회에 나갔다. 나재민은 정재현네 교회에 짜장 배달을 간 이후로 종교에 대한 인식 자체를 고쳐먹었다. 그렇게 잘생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은 나쁜 곳일 리가 없다. 나재민은 탱크보이를 씹으며 잘 빠진 형들의 관심을 받던 그 날의 기억을 반추했다. 어떻게 다시 만날 기회라도 없을지 고민하던 나재민에게 나타난 구세주는 이제노였다. 그가 마침 정재현과 같은 교회를 다니고 있던 거다. 전에 나한테 같이 다니자던 교회가 거기였어? 으응, 거기서 봉사활동 다녔거든. 근데 재민이 네가 싫다며. 에이, 이건 좀 얘기가 다르지.

 

  이제노는 자의적 아웃사이더 나재민의 사교활동 시작 선언을 나름대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울 재민이가 성격도 좋고 얼굴도 잘생겼는데 사람을 싫어해. 사실 나재민은 그저 외관을 좀 가리는 것뿐이었으나 겉보기엔 그럴 만도 했다.

 

  잘 빠진 외국인 형들과 토요일마다 함께 수다를 떠는 건 심신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그중에서도 마크의 캐나다 얘기는 나재민이 특히 좋아하는 것이었다. 캐나다에선 마리화나가 합법이라 어릴 적 집 주변엔 마리화나 밭이 있었다는 마크의 경험담에 나재민은 이유모를 존경심까지 들었다. 사대주의적인 그의 뇌는 자꾸만 저 인간을 꼬셔서 캐나다로 뛰라고 외쳤으나 안타깝게도 마크는 재민의 취향이 아니었다. 그에겐 아주 치명적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재현의 한글 교실에서 나재민이 가장 좋아하는 형 둘이 있는데, 하나는 교회 청년부 태용이 형이었고(진짜 너무 잘생겨서 나재민은 그를 처음 본 순간 진짜로 기립박수를 했다. 그때 이후로 못 봐서 아쉬워하는 중.), 다른 하나는 황욱희였다. 이 형도 솔직히 잘생기긴 잘생겼는데, 그만큼 문제가 좀 있었다.

이마크와 황욱희는 국힙 인간이었다.

 

  "어제 쇼미더머니 봐쓰?"

  "나플라의 플로우는 정말... Oh my God."

 

  그 인간들은 힙합 얘기만 나오면 인격이 바뀌었다. 그것도 좀 에미넴이나 켄드릭 라마 급 래퍼들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일 년 내내 쇼미더머니를 돌려봤다. 고등래퍼는 랩 컴피티션이 아니라고 존나 깔봤다가 연초에 고등래퍼가 시작되면 거짓말처럼 고등래퍼를 돌려봤다. 대체 코리안 랩의 뭐시기가 그들의 심장을 쥐어짰는지 알 수가 없다. 쟈니의 말로는 둘이 힙합으로 친구 먹고 힙콘도 같이 다녔댔다. 밤샘 후 9시간짜리 공연을 스탠딩 1열에서 뛴 그들은... 소울을 공유한 사람들 같았다. 둘다 감사 인사를 할 땐 합장을 했고, 반갑단 말 대신 yo를 외쳤다. 가을에 반짝 유행타고 끝나는 쇼미가 그들에겐 매일매일 마이 붐이었다.

 

  "난 솔직히 약간 프리마 뮤직은 Not my style."

  "그래도 노엘... 영비랑 낸 곡 벌스는 진짜... (황욱희는 이 부분에서 엄지를 세웠다.)"

 

  쟈니와 재현의 일상적 대화에 집중하려 노력할 때마다 마크의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귓가를 파고 드는 래퍼들의 이름에 나재민은 마음이 짜게 식었다. 나재민이 아는 바로는 국힙 좋아하는 놈들 치고 끝이 좋은 놈이 없었다. 일단 이동혁이 그랬다. 일리네어 엠비션을 외치고 손으로 일리네어 싸인을 들어 콘서트 장에서 존나 뛰던 이동혁은 약 16개월을 더콰이엇의 리스너(이동혁은 나재민이 힙찔이라고 부를 때마다 개정색하고 힙합 리스너라는 표현을 권장했다)로 살았다. 그의 낮은 목소리에 유사연애를 먹던 이동혁은 얼마 뒤 터진 박살로 울며 탈빠했다. 아니... 지들끼리 파티 열어서 비키니 입은 백인 여자들 춤추게 시키고... 걔네가 막 웃고 폰으로 그 여자들 영상을 찍는 거야... 나 씨발 걔네 그렇게 활짝 웃는 거 처음 봤어... 뼈게이 이동혁에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황욱희가 yo man을 하루에 몇 번 외치는지 세어보고 싶단 충동이 일을 즈음에 한글 공부방의 문이 열리고 이태용과 이제노가 들어 섰다. 와 씨발 아이봉. 나재민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일었다. 이태용이 테이블에 홈런볼과 썬칩 등등 먹거리를 이것저것 올려놓자 이제노가 포장지를 깠다. 오늘 점심 없대요. 예배는 스킵하고 한글 교실 시작 시간에만 교회에 나오는 재민으로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고개를 끄덕이고 나쵸 봉지 귀퉁이를 찢을 뿐이었다. 그사이 태용은 널부러진 옷가지들을 주워 옷걸이에 걸고 자연스레 욱희와 마크가 앉은 테이블에 합류했다.

 

  나재민은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고개를 들어 이제노에게 어색하게 웃어보이고 그의 다시 어깨 너머를 곁눈질했다. 태용이 형, 어제 쇼미더머니 봤어요? 이건 마크의 물음. 그리고 눈부시게 잘생긴 태용의 미소. 조각같은 얼굴이 입술을 연다.

 

  난 키드밀리가 우승할 것 같더라.

 

 

  태용이 형, 너마저.

  국힙도 안 하고 담배도 안 피우는 황인준이 보고 싶었다.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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