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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그런 일상

규영

  황욱희는 나재민에게 오아시스다. 무채색 세상에서 유일한 색채이고, 햇빛이다. 햇빛이 인간으로 현신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황욱희라 생각될 정도로. 다른 사람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 나재민의 울타리 안으로 서슴없이 들어온 황욱희를 어떻게 나재민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재민은 황욱희를 사랑한다.

“나나, 뭐 해?”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묵직하게 느껴지는 머리가 어깨에 닿자 목소리에 재민은 입꼬리를 끌어 올려 웃으며 책을 내려놓았다. 몸을 살짝 앞으로 빼 욱희의 머리를 피하고 몸을 돌렸다. 저가 제일 좋아하는 얼굴이 바로 눈앞에 보이자 욱희의 볼을 손으로 감싸고 입에 짧게 입을 맞췄다. 자연스러운 스킨십에 욱희도 크게 소리 내 웃으며 재민에게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몇 번이고 맞추며 재민의 허리를 안아들었다. 몸이 들리는 느낌에 몸을 움츠리며 욱희에게 딱 붙었다. 금새 딱딱한 책상 위에 올라오자 눈에 띄게 안심하는 재민에 욱희는 보다 진하게 입을 맞췄다.

“놀랐어? 나나가 앉아 있으니까 뽀뽀하기 너무 불편해서.”

 팔을 책상에 지탱해 재민을 그사이에 가두고 재민의 눈꼬리에 입을 맞췄다. 재민은 간지러운 느낌에 작게 소리 내 웃으면서 괜찮다고, 욱희를 따라하 듯 욱희 눈꼬리에 입을 맞췄다. 그냥 책 읽고 있었어. 정확히는 시집. 나중에 쉬시도 한 번 읽어 볼래? 재민은 욱희의 팔을 피해 제가 읽고 있던 시집을 끌어오려다, 욱희의 손에 저지당했다.

“아냐. 나는 시집보다 나나가 더 좋아. 나중에 나나가 나 읽어 줘.”

  어린아이처럼 투정부리듯 말하는 것에 재민은 알겠다며 욱희의 어깨를 잡고 다시 입을 맞췄다. 밖에서는 어른스럽게 행동하며 모두를 통솔하는 욱희가 제 앞에서는 마음 놓고 행동한다는 사실이 재민에겐 특권이다. 남들이 모르는 황욱희를 자신만 알고 있다는 승리감과 비슷한 무언가가 항상 재민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장난치듯 가벼운 입맞춤을 이어가다, 재민이 욱희를 살짝 밀어냈다. 뽀뽀가 저지당하자 금방이라도 울 듯한 눈으로 저를 보는 욱희를 가만히 보다가, 재민은 엉덩이를 움직여 뒤로 몸을 뺐다.

“쉬시, 내가 좋아하는 시가 있는데 쉬시한테 들려주고 싶어. 들려줘도 돼?”

  의문형이었지만 꼭 들려주고 싶다고 쓰여있는 얼굴에 욱희는 고개를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웃었다. OK. 나나가 들려주고 싶으면 들려줘. 어떤 건지 너무 궁금해. 재민은 욱희의 얼굴을 손으로 감쌌다. 시를 외운 건 아니고, 그냥 내 마음대로 말하는 거니까 웃으면 안 돼. 알겠지? 걱정스러운 말에 욱희는 고개를 살짝 틀어 재민의 손바닥에 입을 맞췄다. 걱정 마, 나나. 진지하게 들어줄게.

내 눈을 감기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재민은 천천히 시를 읊으며 욱희의 눈에 입을 맞췄다. 재민의 얼굴이 가까이 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던 욱희는 제 눈에 입을 맞췄다는 것을 알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재민의 말을 들으며, 가만히 순서대로 재민이 제 귓불과 입술에 입을 맞추는 것에 재민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고개를 뒤로 빼려는 재민의 뒷머리를 큰 손으로 잡아 고정하곤, 재민의 안으로 혀를 밀어 넣었다. 외설적인 소리가 방안을 가득 울릴 정도로 깊게 키스를 이어가던 재민이 욱희의 어깨를 툭툭 쳤다. 욱희는 아쉽다는 얼굴로 재민에게서 입술을 떼어냈다가, 침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에 다시 한 번 쪽, 소리가 나도록 입을 맞추고 떨어졌다.

“아직 다 안 했는데 키스하면 어떻게 해, 쉬시.”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장난스레 타박하는 목소리에 욱희는 재민을 품에 꽉 끌어안고 놔주었다. 나나가 귀여워서, 예뻐서 그랬어. 사랑스러워서. 물론 언제나 그랬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부끄러운 말을 하는 욱희에 재민은 입술을 안으로 말았다가, 작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큼큼, 재민은 목을 몇 번 가다듬고는 저를 안은 욱희의 팔을 풀곤 두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손을 끌어올려 욱희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내 팔을 꺾으세요 나는 당신을 가슴으로 잡을 것입니다.

  욱희의 손을 놓고 이번에는 재민이 먼저 욱희의 목에 팔을 감아 안았다. 저보다 커서 그런지 몰라도, 품에 다 안 들어오는 것에 재민은 팔을 더 넓게 벌려 욱희를 품에 안았다.

심장을 멎게 하세요 그럼 나의 뇌가 심장으로 고동칠 것입니다.


당신이 나의 뇌에 불을 지르면 그 때는 당신을 핏속에 실어 나르렵니다.

  말을 마치고 나서 재민은 부끄럽다는 듯이 욱희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시를 다 듣고 나서 욱희는 크게 웃으며 재민을 다시 끌어안았다. 시를 읊으며 입을 맞출 때 언제고, 지금 이렇게 귀엽게 숨으려고 하는 제 사랑스러운 연인이 아주 귀여웠다. 사랑스럽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더 많은 단어로 제 마음을 말하고 싶은데, 떠오르지 않아 욱희는 제 머리를 탓했다. 나나가 이렇게 예쁜데.

“나나, 고마워.”

  많이 부끄러운지 고개를 들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욱희는 입꼬리를 올린 채 재민의 등을 쓸어내렸다.

“나도 많이 사랑해, 나나.”

  나재민은 황욱희에게 그늘이다. 정신없는 곳에서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숨 돌릴 수 있는 쉼터다. 자신만을 위한 쉼터를 하늘에서 내려준 게 틀림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래서 조용한 나재민의 세상에 겁없이 들어갔다. 그의 곁에서 쉬고 싶어서. 당연한 듯 자신에게 자리를 내어준 나재민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황욱희는 나재민을 사랑하고, 사랑한다. 그것은 나재민 또한 마찬가지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살로메에게 바치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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